2016년 1월 11일

국산 고성능 수퍼 컴퓨터 개발을 기대하며

작성일 : 2015-12-28
 
최근 학계와 연구소를 중심으로 수퍼 컴퓨터를 지향하는 고성능 컴퓨팅 기술 개발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학계에서 고성능 컴퓨팅 기술 개발을 위한 기반 연구들은 이미 십수 년 전, 아니 수십 년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컴퓨터 구조, 컴퓨터 네트워크, 운영체제 등 시스템 SW와 HW 분야에서 연구해 오던 학계와 연구소의 교수들과 연구진들이 연구비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개발 연구를 진행하며, 명맥이나마 끊어지지 않고 이어왔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연구 개발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어온 결과 이제야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한 한 시도로 올해에는 ‘초고성능컴퓨팅 발전 포럼’이 출범하기도 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지원 하에 KAIST를 중심으로 서울대, ETRI, KISTI 등 국내 학계와 연구소의 연구진들이 참여하였고, 사업화를 목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다수 참여하여 함께 머리를 싸매고 국산 수퍼 컴퓨터 개발을 목표로 한 연구 방안과 제품화 로드맵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미래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학계 및 연구소가 개발을 주도하고, 기업의 자발적 사업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그 흐름을 잡아가고 있다. 의미 있게 시작되고 있고, 이제까지의 연구 개발에서 지나쳤던 시행착오와 가능성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피드백을 받으며 반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도 어떻게 개발 방향과 제품화가 진행될 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선진국들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장기간 개발해 왔다는 점과 이를 사용하는 필수 사용자 계층이 확산되지 않으면 그 개발 결과가 퇴색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시장 변화로 초고성능 컴퓨팅 파워를 클라우드 환경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 등, 주변에서 언급되는 많은 지적들로 인해 과연 이번의 연구 개발이 잘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 게다가 미국이나 일본 같이 자발적 대규모 연구 개발이 활성화 된 사회나 사업화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국가가 아닌 우리의 척박한 인적, 물적 자원 환경에 비추어 볼 때, 정책적 지원으로 시작된 개발이 잘 성공할 수 있느냐가 더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 사항들을 고려하여 개발 방안은 이미 포럼과 공청회 등을 통해 마련되고 피드백까지 반영해 완성되어 가고 있다. 다만, 그 연구 개발의 성공과 제품화를 위해 함께 발상을 전환하여 고려해야 할 다른 부분들을 몇 가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 첫번째는 많은 사용자 군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터를 지향하는 것이다. 음성 전달이 주요 기능이었던 핸드폰 환경이 사용자 친화적인 스마트폰 환경으로 바뀌었듯이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 대중에게 쉽게 쓸 수 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해야 하고, 다양한 응용 환경에서 문제를 해결할 고속의 대용량 서비스 응용들이 더불어 개발되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소수의 전문가만 사용하는 특수 환경이 아닌, 초고성능 병렬 컴퓨터가 일반인이 해결하려는 문제들을 빠르고 손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대용량 미디어 데이터 처리, 고속 과학계산 처리, 복잡한 통신환경 단순화 등에 초점을 맞추어 효과를 높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규모도 중급을 넘지 않도록 하고, 가격대도 보급형이라 할 정도로 경쟁력 있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개발과 더불어 학교나 연구소, 기업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고성능 컴퓨터의 사용자 인프라를 더불어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순수과학 분야를 비롯한 응용과학분야와 연계한 사용자 커뮤니티를 구축하여 활성화하고, 중고등학교 또는 최소한 대학교들에서라도 손쉽게 고성능 컴퓨팅 환경을 사용하는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구축해 가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수퍼 컴퓨터가 있어도 사용자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반면 학교에서부터 고성능 컴퓨터를 가지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연습을 한다면, 이후 자신이 속한 직장이나 산업계에서 병렬화 된 사고로 고성능 처리 환경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고난이도의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좋은 처리 방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수학 실력은 세계 수준인데, 세계적인 수학자가 나오지 못하는 우리 수학계의 어려움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개발은 향후 학계나 연구소 뿐만 아니라, 산업계에 미칠 파급 효과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수 조원도 아니고, 수 천억 규모도 안되는 개발비에다가 우려가 많은 현실에서 웬 확장성 있는 파급 효과인가 하겠지만, 이번의 협력 개발은 이제까지의 산학연 협동 개발 방식과는 다르게 고성능 컴퓨팅 분야에서 국내 최고 기술을 가지고 있는 학교들과 연구소, 그리고 동종 분야에서 제품화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 최고의 역량을 집중하여 동등한 역할 분담으로 개발하는 최고급 기술이자 제품이 된다. 이는 지원자로서의 미래부 입장에서도 어렵사리 이끌어 낸 최고의 컨소시엄이 되고 있다.
 
그러한 시도로 인해 우리 개발 인프라가 협력 측면에서 역동성을 갖출 수 있고, 양질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또한 그 사용자 인프라를 활성화하여 상호 연동되는 환경을 구축 할 수 있다면, 학교는 고성능 컴퓨팅 환경이라는 고급 과학계산 및 사용자 환경을 갖추어 학생들에게 전혀 다른 레벨의 학습 환경을 제시하게 되어 학습 역량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연구소는 양질의 수퍼 컴퓨터 연구 및 개발 환경을 갖추게 되어 과학 및 공학에서의 계산처리 분야에서 최고의 연구 결과를 가능케 할 것이다. 그리고 산업계에서는 의미 있는 국내 시장의 점유율과 피드백을 바탕으로 글로벌 고성능 컴퓨터 기업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될 것이다.
 
1994년 병렬 컴파일러 연구로 국내 학위를 받고도 병렬 컴퓨터를 사용해 보지 못했는데, 미국으로 박사 후 과정을 가서 처음 16개 프로세서의 고성능 컴퓨터를 접했을 때의 그 감흥과 아쉬움은 20년 이 넘은 지금도 잊지 못하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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