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5일

도쿄 행 신칸센에서 보는 일본

작성일 : 2015-04-21

도쿄 행 신칸센에서 보는 일본

지난 주 후반부터 개인적인 일정으로 오사카와 도쿄를 방문중이다. 짧은 일정인데다 이제까지 그리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일본 문화와 사회에 대해 어떠한 소감을 적는다는 것이 조심스러우면서도, 몇 가지 작은 에피소드에서 우리와는 많이 다른 이들의 삶에서 느끼는 바를 숨길 수 없어 펜을 굴린다.

가장 먼저 느낀 다름은 간사이 공항을 통한 입국 시 입국신고서의 이름 기입 부분이었다. 중국이나 대만은 이름 기입란이 하나이고, 한문이나 영어로 기입하는 것으로 기억되는데, 일본은 한문 이름과 영문 이름 기입란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여타국가에 입국할 때처럼 습관적으로 영문 이름을 기재하였으나 입국 심사자가 한자 이름칸이 비어있다며 한자 이름도 채울 것을 요구하였다. 순간 이 친구가 내가 한국인이기에 이것을 요구하나 싶어, 영어로 ‘난 한자가 편리하지 않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랬더니 어색한 표정으로 난감해 하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더 이상 요구하지 않고 통과시켰다. 그런데 나오면서 (물론 그 이유는 아니었겠지만 일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는 선입견에)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 ‘내가 서양인이라도 이것을 요구할까?’ 하는 것이었다. 한자로 쓴다고 한국식 발음으로 이름을 읽어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몇년 전 미국으로 가기 위해 잠시 일본을 거칠 때에도 있었다. 보안 심사대에서 카메라 거치대를 통과시키던 과정으로 기억되는데, 그 길이가 초과된다고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출국할 때에는 통과되었다고 하니, 여긴 일본이니 일본 방식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거치대는 분리할 수 있는 것이라 그 자리에서 분리하였고, 길이는 절반이 되었다. 그랬더니 통과하라는 것이었다.

이전의 유사한 경험이 기억나면서 이들의 융통성 없는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생각해 보니, 이것은 ‘융통성 없음’ 이라기보다는 원칙대로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이 나라 사람들의 ‘곧이곧대로 방식’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반면 너무나도 과도한 융통성에 온갖 변칙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가 떠올랐고, 그들의 방식을 마냥 불합리하다고 매도할 수 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면 ‘그것은 옳지 않다’고 쉽게 편견을 갖는 사고 방식이 나를 더 편협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도 들면서 말이다.

​그리고 일본에 가면 항상 보는 것이지만, 소화(昭和) 몇 년에 개업했다든지 백 몇십년 지난 가게나 음식점이라든지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지난 며칠 간 식사를 한 꼬치나 우동 식당들이 그런 곳이었고, 빵집과 기념품점들이 그런 곳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도 목공을 하는 취미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아, 잠시 기차 시간이 남는 몇 시간의 여유를 핑계 삼아 유명하다는 시외의 작은 목공구 전문점을 찾아가게 되었다. 지하철과 전철을 갈아타며 헤맨 끝에 칼과 끌, 대패, 톱 만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오래된 가게를 찾을 수 있었고, 그곳에서 30대 중반의 젋은 하야시 사장을 만났다.

나는 한국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명품 수제 목공구들을 접하게 되었다는 기쁨에, 그는 대패를 사기위해 이 우중(雨中)에 왔다고 하는 한국인에 감동해, 우리는 오래된 친구인 양 금방 친하게 되었다. 비록 그는 일어로 말하였고 나는 영어로 말하였지만 약간의 ‘만국공통어’가 윤활유가 되니 서로의 의사 소통에는 아무 장벽이 없었다. 몇 개의 대패를 구입한 후 후일을 기약하려는데, 가게 안쪽의 문이 열리며 60대 후반의 노인분이 나왔다. 그는 젊은 하야시 사장의 아버지이자 이 가게의 창업자인 또 다른 하야시 사장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 대를 이어 2대 째 목공구 전문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사업을 2대 째 하면서 아버지 때에는 일본의 칼날 장인, 대패 장인, 톱 장인들과 연계하여 그들이 제품을 안심하고 잘 팔 수 있도록 제작 판매 환경을 만들어왔고, 아들 때엔 가게 홈페이지를 만들어 모든 제품을 인터넷에 올리고 관련 행사나 문화 활동을 통한 홍보 등 보다 현대화 된 사업을 하고 있었다. 두 사장과 악수를 나누고 자주 연락하자며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 여행지인 도쿄를 향해 신오사카 역에서 신칸센에 몸을 실었다. 시속 340km 속도로 서울-부산 거리보다 훨씬 먼 오사카-도쿄 거리를 2시간 30분에 주파하기 위해 내달리는 신칸센에서 눈을 감고 과거의 일본과 현대의 일본, 그리고 현재의 일본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본다.

이들에게서는, 답답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나 원리원칙이라는 기본에 충실하려는 일본인들의 과거 모습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오고 있었다. 기본적인 기술이나 사업 방식 역시 여러 대에 걸쳐 꾸준히 개선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그 결과로 어떤 산업에서든지 탄탄하고 안정적이며 그 견고함을 인정받고 있다. 다만 지리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바깥 세계와의 소통이나 공감보다는 가까운 내부에 더 집중해 오던 과거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져, 아직도 외부와의 조화를 위해 스스로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가깝고도 먼, 하지만 가까워져야 할 일본을 생각하는 사이에 신칸센은 도쿄 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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