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2일

[CEO칼럼] 2020을 바라보는 문재인 정부의 ICT 과제

작성일 : 2018-01-22

CES 2018 참관을 마무리하고, McCarren 공항에 앉아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순간 머리를 스쳐간 충격, ‘중국은 이미 우리를 지나쳤다’였다. CES 2018의 4000여 개 전시 부스 중 1300개 이상이 중국 또는 중국계 기업이었다. 중국은 미국을 관문으로, 그들의 나라에서 검증된 제품과 기술을 글로벌 시장에 선보였다. 잘 기획된 시나리오을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국은 대륙의 큰 배포 기질과 사회주의 정권의 결단력을 바탕으로 중장기 스케줄에 의해 그들 세상 중심의 마스터 플랜을 끌어가고 있다. 한국은 고려 가능한 경쟁자 후보로도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반면 우리는 지난 20여년 간 정치 지도자들이 바뀔 때마다 ICT 정책이 급변하면서 ICT 산업 분야에서의 백년대계를 지속성 있게 진행해 나가는 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최근 적폐청산이 진행되면서, 이전 정권들과 밀착된 우호관계를 유지해 온 대기업 오너들이 여러 형태의 법적 심판 대상이 되고 있고, 이로 인해 이들이 도장을 찍어야만 하는 사업들 또한 여러 결정시점을 놓치고 있다. 그래서 양호한 시장 여건에도 불구하고, 대기업군의 작년 실적은 전반적으로 기대에 못 미친다. 특히 ICT 사업 분야는 몇몇 글로벌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숨쉬기 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ICT 산업 방향은 지금 어떤가?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의 촛불 혁명의 열망을 등에 업고, 많은 기대를 받으며 출발하였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 복지 및 사회 분야를 제외한 영역들은 아직도 그 방향성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혹여나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높은 지지도라도 추락하게 되면,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대규모 비용이 수반되는 ‘인간 삶의 질 향상 시스템’은 안정 궤도에 올라가기도 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미래를 향한 ICT 마스터 플랜을 책임질 적임자가 이 정부에서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시 ‘친문’ 그룹에서만 인재를 찾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전 정부들에서 우수 인재가 이미 고갈되어 버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현 정부 들어 높아진 도덕적 기준을 충족시킬 만한 ICT 리더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좋은 인재를 때에 맞게 발탁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책임감 있는 임무를 부여할 수 있는 것 또한 지도자의 커다란 능력이 아니던가?

컨트롤 타워 문제는 차치하고, 현재 드러나는 ICT 정책은 어떠한가. 정부가 바뀌면 가장 먼저 정책 입안자들이 하는 일이 이전 정책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새로운 이슈를 발굴하여, 수년 내에 성과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라 한다. 매번 그랬다.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늘 이전 정부에서 추진하던 ICT 정책들을 살펴보면 꼭 그 정권의 특성을 고려하여, 효과 있을 법한 것만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ICT 정책이라는 것이 단기적 시한성을 가지며 태어난 정권의 입맛을 맞추기 쉽지 않고, 또한 비정치성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단기적 성과를 포장하기엔 ‘창조’라든가, ‘미래’라는 말을 덧붙여, 유사한 이슈를 포장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말이다. 해서 이 정부에서는 지난 보수정권에서 추진했던 정책을 시급히 분석하여, 치밀하게 식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입맛에 맞든 안 맞든, ICT 정책의 연속성을 심도 있게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다.

동시에 ICT 분야에서의 산업 방향도 중소, 중견 기업 중심의 틀로 재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중소기업벤처부를 만들지 않았는가?’ 라고 답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 안에 새로이 보완된 ICT 정책은 무엇인가? 중소기업 중심의 지원시스템을 ‘부(部)’라는 이름으로 승격(?)시킨 것을 제외하고는 대폭적인 예산 증가나 참신한 아이디어가 반영된 신정책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또 ‘중소, 중견기업 중심의 ICT 정책은 과기정통부에서 담당한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 기술과 정보통신 정책 부서가 합쳐져 있어 그 중심축도 헷갈리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산업계보다는 학계 중심, 연구소 중심의 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한 현 체제는 지난 정부에서도 문제였는데, 그대로 답습한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또한 2~3년 주기로 과기정통부의 실무 책임자들이 빈번하게 이동되는 상황에서 전문성 축적이나, 책임감 있는 중장기적인 정책입안은 꿈도 꾸지 어려운 실정이다. 신정부 출범 이후 역량 있는 ICT 정책 기획 실무자들이 손 놓고 있는 현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현재 ICT 정책의 핫 이슈로 AI가 대두되고 있고, 그 영향으로 신규 R&D 자금이 집중 투자되고 있다. 그래서 단위 규모로 연간 수십억 되는 정부 연구비가 특정 교수의 연구실에까지 가고 있다. 물론 학계의 지원 규모를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로 나올 실적이 과연 산업 분야에 효과가 있을까? 이전의 경우를 비춰볼 때, 투자 비용 대비 실질적 결과물은 매우 미흡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까지 그래왔고, 현 지원체계에서도 별 다른 대안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양성된 우수 졸업생들이 대기업이나 학계를 선호하는 현 상황에서, 산업계가 배제된 연구지원 체계라 그렇고, 현 결과물에 평가체계로는 실용성 부족한 논문과 내용물만 양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R&D 자금이기에 더욱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산업계에 대한 직접적인 기여 방안을 물어보면 이에 대한 대답은 궁색할 것이다.

우리 ICT 제품 시장의 이면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PC, 서버, 스토리지 등의 제품과 관련된 SW들이 모두 외산으로 채워져 가고 있는 현실이 있다. 방패막이 기업이 없다. 그나마 국산을 선호하는 성향으로 인해,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기반을 다진 보안 분야의 중소/중견 기업이 몇몇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 또한 국제 경쟁력을 이야기 해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ICT 인터넷 서비스 사업 분야는 좋은 시작을 보였고 참신한 아이디어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규모의 싸움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글로벌화 하기엔 역부족이고, 몇몇이 고군분투 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게임 분야만은 좋다고 볼 수 있으나, 이미 중국의 경쟁력은 우리를 넘어섰고, 그들의 시장에서 검증된 제품과 기술은 언제라도 우리에게 쓰나미로 급습할 수 있다. 우리에게 반도체가 있고, 핸드폰이 있다고? 오직 2~3개의 대기업이 우리 ICT 생태계를 책임질 수 있을까, 이들에게 ICT의 국가적 운명이 좌지우지 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할 것인가? 언제쯤 이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누가 할 것인가? 하지만 인사가 만사이고, 사람들에 의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망가지는 바, 인재를 잘 찾고, 그를 세워주고, 밀어주어 나가는 것이 기본임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총대를 메겠다고 할 사람이 없다. 받아놓은 축하 난(蘭)은 이미 시들어 가고 있을텐데.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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