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7일

ICT 분야에 노벨상이 생긴다면?

작성일 : 2015-10-19

지난 주, 국제 학회 참석 차 취리히에 갔었다. 멀티 컨퍼런스로 진행된 국제학회이었던 바, 컴퓨터 분야 학회와 재료공학 학회, 그리고 토목공학 학회가 함께 진행되었다.

그곳에서 우연찮게 일본에서 참석한 두 명의 중소기업 임원, 그리고 한 명의 노교수와 점심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그 회사는 연혁이 70년이 넘는, 세칭 ‘볼트와 너트’를 생산한다는 유니버셜 조인트 생산기업이었다. 명함에 적힌 회사 이름이 사장 이름과 같아 넌지시 물어보니, 할아버지가 세운 회사라 했다. 기초적인 연구의 많은 부분을 산학협동으로 진행하던 차에 논문을 발표하게 되어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노벨상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올해 2개를 받아 기쁘겠다고 하니, 작년엔 3개였다고 일본 교수가 답을 한다.

 

서로 말문이 터진지라, 한 시간여 동안 점심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100년이 넘는 기업이 5만 개가 넘는다고 하니, 70년이 넘는 기업은 얼마나 많을까마는, 그 기업들이 저마다 기반기술과 기초연구를 위해 산학협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든지, 대기업은 물론이고 많은 중소기업들이 명시적인 기술력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특허와 논문 결과물에 많은 장기투자를 해오고 있다든지, 그래서 탄탄한 기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든지, 일본 정부는 이를 지속적으로 대가 없이 지원하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에, 대꾸할 말이 없어 듣기만 하자니 한편 시샘이 나면서도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하니씩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그러던 차에, 일본이 노벨상을 24개나 타고 있는데, 우리는 왜 안되는가 하는 논란으로 가득한 국내 언론지상의 논쟁들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장기간 기초 과학에 대한 투자를 하면서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든지, 바팅 없이 결과만 추구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든지, 새로운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기술보다는 응용 기술에만 치우친다든지, 긴 안목을 갖지 못하고 단기적인 성취에만 신경 쓴다든지, 조변석개로 자주 바뀌는 교육시스템이 문제라든지, 정권마다 자기 집권 이내에 결판을 내려는 조급증이 문제라든지, 저마다 옳은 분석(?)을 쏟아내고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장기적 안목으로 기반을 구축하고 기초에 충실하자’는 것이 그 요약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노벨상으로 인해 생긴 여러 논란과 원인 분석, 그리고 대안들을 관심있게 지켜보며 한 주를 보내던 차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 10시간이 넘는 비행 기간 동안 지난 시간들을 정리하면서, 만약 컴퓨터 분야 또는 ICT 분야에 ‘노벨상’이 생긴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의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또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노벨상의 특성상 그 기준은 ‘정보과학 분야에서 창조적 대안으로 인해 이 기술과 이론이 인류 발전과 평화에 어떻게 기여했는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준에 적합한 대표적 분야나 그 내용은 어디일까? 아마 가능한 예를 든다면, 상업적 가치에 중심이 있다는 선입견이 있는 모바일 게임 분야나 스마트폰 앱 기술들과 같은 최신 응용 기술 분야보다는, 수십년 간의 발전 과정 동안 정보이론 분야에서 변화를 이끈 획기적인 대안이나, 다양한 시스템 SW 분야 또는 HW 분야가 우선 고려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분야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에게는 돈이 되지 않는 분야이자 돈을 만들기 쉽지 않은 분야이다. 게다가 정부 차원에서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대규모 지원을 하여야 하는 바,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하는 정권들의 성향으로 볼때, (비록 순수과학 분야보다는 빠른 시간 내에 결과를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치적을 내세우기에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분야이다. 그래서 지난 수십년 간 이 분야에서의 ICT 기업 수나 정부나 기업의 투자금액, 시장 규모, 기술정도 등 그 어느 지표도 초라한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ICT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가 온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듯 노벨상을 위해 방향성을 조정할 필요도 없고, 그 만큼 가치가 있는가도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다시 이야기하여,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기반을 구축하고 기초에 충실하자’는 원칙만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앞서 나열하였듯이 과학 및 공학 분야에 대한 우리 정부나 기업의 인식은 일본과 비교해 볼 때 그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우직하게, 너무나도 우직하게 기초와 기본에 얽매인 학계와 기업, 그리고 그들의 장기적인 산학연계, 이를 간섭하지 않고 대가 역시 바라지 않으며 묵묵히 지원하는 정부의 장기 정책이 그들 일본에는 있다.

 

반면 우리에게는 기초 기술을 발전시키고 그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화 하고자 하는 개인이나 기업에 대해 정부의 지원이나 투자, 그리고 기반 기술에 기초한 기업의 혁신적 제품화 노력이 아직 부족하다. 이는 기초 분야의 기술력을 가진 엔지니어와 과학자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안목을 이 사회가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기술 기업들의 기술 가치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이 정부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ICT 분야에서 노벨상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옆 나라 이야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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